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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사랑(오랜만에 신곡)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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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 천년의 사랑
장르 : 뉴에이지/클래시컬
감성 : 어두워/무거워
템포 : 90 Tempo
날짜 : 2009-06-07 17: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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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 혼자 작업한 신곡은 엄청 오랜만이로군요. 최근에 딩이와 함께 작업한 공동곡이 운추곡이 되어서 기분이 매우 업된 생태입니다.





천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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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이 불타 올라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변치 않기를...........


나는 그대에게 손가락 걸고 약속합니다.


이번 생에서도........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



"저기 간다."


"제길."


 그때, 일렁이는 횃불들의 물결이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청년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목을 휘감고 있는 그녀의 팔이 점점 죄어온다. 두려움. 그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그녀의 여린 마음을 조금씩 태우고 있는 것이다.


"아씨. 꼭 잡으세요."


"으..........응."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산길. 하지만 청년의 초인적인 인내력은 그녀의 무게마저 잊게하고 있었다. '잡히면 죽는다' 그 일념은 이미 십여리 길을 달려온 그의 다리를 다시금 움직이게 했다.


-휘익


-탁


"헉."


 그때,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한 줄기의 빛줄기가 청년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붉은 혈선이 어둠 속에서 가냘프게 그어졌다. 그리고 곧 이어 혈기왕성한 생명력을 머금은 뜨거운 핏물이 스며나왔다.


"제길. 화살을 쏘다니."


 목적을 잃은 한 획의 선이 바닥에 박혀 가늘게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있지 않아 잠잠해져 다시 한 개의 화살로 돌아갔다. 점점 꺼져가는 생명력. 청년은 그 모습을 보며 온 몸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왠지 그것이 잠시 후의 자신의 모습 같았기에.........


"맞았나?"


"아니, 아직 움직이고 있다."


 뒤에서 자기네들끼리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은 청년의 등에 업혀있는 자신의 상전마저도 죽일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어둠 속에서 활시위를 당길리가 없다.


-휘휙


-파팍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자 다시 몇 개의 눈먼 화살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조준해서 쏘는 화살보다 아무렇게나 쏘는 화살이 더 무서운 법이다. 조준해서 쏘는 화살은 사수의 의도만 잘 파악하면 피하기 쉽다. 매겨진 화살, 당기는 활시위,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의 초점은 사수의 목적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큰 약점들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쏘아진 화살들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운이 없으면 자신을 노린 화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하다가 몸을 허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파파팍


"크윽."


 대부분의 화살들이 그들의 주위에 떨어졌다.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위협할 만큼 가까이 떨어진 화살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위험하다. 혹시라도 정확히 맞았다가는 뒤에 업힌 그녀의 목숨이 먼저 꺼져버리는 것이다.


"아씨. 위험합니다. 내려서.........."


 청년은 급히 그녀를 등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때, 잠잠하던 뒤쪽에서 카랑카랑한 노호성이 터져나왔다. 


"뭐하는 거냐? 이놈들. 사람이 몇인데 그것 하나 못 맞춘다는 말이냐?"


"그것이 아니오라.........사위가 어두운지라........."


"말대꾸를."


-퍽


 그 목소리를 듣자 그녀의 눈은 더할 수 없이 크게 흡떠졌다. 너무나 낯익은 목소리. 그녀의 길지 않은 삶 동안 항시 들어왔던 그 목소리.........


'아버지.'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설움의 봇물은 그녀의 눈동자를 뚫고 피눈물이 되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불화살을 당겨라."


"하지만 어르신. 그러면 숲에 불이..........."


"상관없다. 어서 불화살을 쏴."


"예.........예."


 아버지의 다그침은 더욱 격심해졌다. 그녀를 죽일 셈이다. 아버지가........그것도 자신이 낳은 딸을.........


-피잉


 효시가 공중으로 쏘아졌다. 순간 나무 그늘에 가려 어둑어둑한 심야의 삼림이 짙은 그림자를 지우며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던 그들의 인영도 모두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옳지."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아버지는 활시위를 당겼다. 불화살은 곧 꺼질 것이다. 그 사이 저 놈년들이 어디로 숨어버릴지 모른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것이다.  


"아씨. 어서 내리세요."


 청년은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팔에 힘을 뺐다. 하지만 그의 목을 감고 있는 여자의 팔은 도통 풀리지 않았다. 청년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아씨. 아씨."


-피잉


 그때, 힘차게 당겨진 활시위가 아버지의 손을 떠났다. 차가운 살기를 머금은 화살은 부채꼴 궤적을 그리며 그들에게로 정확히 쏘아졌다.


-푹


"흐윽."


 맞았다. 찌릿한 전류가 그녀의 등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화살을 맞는 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평생 이런 경험을 할 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느끼고 있었다. 가슴 가득 슬픔을 품은 채로..........


"맞았다."


"어서 쫓아라."


 피가 흐른다. 날카로운 화살에 찢겨진 상처는 끊임 없이 붉은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옷에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수줍은 두견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아씨."


 청년은 울부짖었다. 화살을 맞은 것은 여자인데........마치 자신이 화살을 맞은 것처럼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아씨. 아씨."


"저......정길아..........어서........도망쳐."


 여자는 간신히 그렇게 말하고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청년의 목을 감고 있는 팔은 끝까지 풀지 않았다.


"아씨. 크흑. 아씨. 죽으신 것은 아니죠?"


"............."


"네? 그런 거죠? 꽉 잡으세요. 이제부터 달릴테니까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냅다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상처 입은 범이 산으로 질주하는 모습과 같았다. 그의 다리에서는 지금까지 몸 속 깊은 곳에 웅크려 있던 잠력들이 마구 용솟음치고 있었다. 뒤따라 오던 추격자들은 그런 청년을 잡을 수가 없었다. 힘든 것은 쫓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쫓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십여 리를 달려온 그들의 다리는 이미 힘이 빠져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청년과 추격자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하아. 하아."


 추격자들이 보이지 않자 청년은 발을 멈추고 가슴을 쥐어짜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망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무사히 도망쳤다. 자신의 아가씨와 함께.


"하아. 하아."


 만약에 다시 추적자들이 따라 붙는다면 절대 한 발짝도 떼어놓지 못 할 것 같았다. 그는 깊은 숨을 몰아쉬며 지친 몸을 쉬게했다. 하지만 결코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러면 등에 업혀 있는 여자가 다치리라는 것을 알기에.........


"아씨. 기적입니다. 성공했어요. 무사히 도망쳤다고요."


"..............."


"하하.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아씨는 언제나 운이 좋다고요."


".............."


"아씨. 주무세요? 주무시는 거죠?"


 청년은 계속 웃음을 지으며 등에 업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미 차가운 피는 그녀의 옷을 붉게 물들이는 것으로 모자라 청년의 바지마저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씨.......이제 일어나세요. 아씨!"


".............."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럴수록 그녀를 부르는 청년의 목소리는 점점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씨! 아씨!."


"으........으음."


"아..........아씨. 일어났어요?"


"아........정길아."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일까? 점점 식어만 가던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온기가 되살아나며 그녀가 힘없이 눈을 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바람 앞에 등불처럼 아슬아슬한 생명력이었다. 누군가 입김이라도 훅하고 불면 단숨에 꺼져버릴 것 같았다.


"아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조금만 가면 인가가 있을 거에요."


"정길아."


"아! 배고프시죠? 먹을 것부터 구해올까요?"


"정길아!"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청년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는 끝까지 부정하고 있지만 가슴은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생기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예............아씨."


"이제 그만...........내 이름을 불러줘."


"예? 제가 어떻게?"


"제발.........."


 청년은 등에 업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꺼질듯 말듯 일렁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눈에 선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꼭 감으며 입 속 가득히 맴도는 음성을 밀어냈다. 평소에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그 이름. 하지만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던 그 이름.


"수혜......... 아가씨."


"흐........아가씨는 빼고."


 잠시의 망설임.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수혜."


"헤에."


 결국 자신의 바램대로 되자 여자는 작게 미소지었다. 결국 그녀도 그 호칭이 듣고 싶었던 것이다.


"헤헤."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신 겁니까?"


"정길아........"


"예! 아씨." 


"츳. 또 아씨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청년은 더 이상 그녀가 말을 못하도록 막고 싶었지만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마치 한 움큼의 생명력도 함께 섞여나오는 것 같았다.


"정길아."


"예. 아씨...........아니..........수혜."


"우리..........다시 태어나면..........이렇게 연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신분. 그 놈의....... 평생토록 저주하고 싶은 신분. 그것이 무엇이길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부모로 하여금 자식을 죽이도록 한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이별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사랑하지 말 것을.........차라리 머리 터럭을 곱게 떨구고 여승이나 되어버릴 것을........


"무슨 소리예요. 아씨."


"우리 다시 태어나면........꼭 같은 신분으로 만나자."


"아씨. 약한 소리하지 마세요. 이제 곧 인가가 나올 거예요."


"다시 태어나면........다시 태어나면 꼭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서..........사랑했으면 좋겠다."


"아씨. 정신을 놓으면 안 돼요. 조금 있으면 산을 넘는다고요. 아씨!"


 그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사실을. 그의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팔이 점점 풀려갔다. 그럴수록 그는 그녀를 붙잡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줬다.


"고마워...........그 동안..........나를 사랑해줘서."


"아씨! 아씨."


-툭


 새하얀 그녀의 손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침묵의 물결이 사위를 휩쓸고 있어서 그런지 힘이 빠져 추락하는 그 낙화의 소리가 너무나 크게 울려퍼졌다. 이미 목소리를 잃은 그녀의 머리는 청년의 넓은 등에 푹 파묻혔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에서는 실낱같은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씨."


"............"


"아씨?"


"..............."


"거짓말............거짓말인 거죠? 다시 잠든 거죠? 그런 거죠?"


"..........."


 청년은 계속해서 등에 업힌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이미 파랗게 식어버린 그녀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대답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 피곤하셔서 그런 거구나.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씨."


 그는 혼자서 그렇게 위로하며 그녀를 다소곳이 내려 놓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그것은 이미 산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이........이것 때문에 그러신 거죠? 제가 뽑아드릴게요."


 그는 허둥지둥거리며 그녀의 등에 박혀 있는 화살을 잡았다. 그 화살은 그녀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깊게 뿌리 박고 있었다. 그는 화살을 조심스럼게 틀어쥐더니 단숨에 그것을 뽑아냈다. 그러자 뽑혀지는 화살촉과 함께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는 선혈이 솟아올랐다. 그 피는 4월의 미풍에 흩날리는 벗꽃잎처럼 그의 얼굴에 흥건히 뿌려졌다.


"이.........이제 안 아프시죠?"


"..............."


"조..........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의원을 모셔올게요. 이제 산을 거의 다 지났으니 분명 의원이 있을 거예요."


"............"


"아씨!"


 너무나 그리운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피를 토하고 죽을 이름이여. 왜 대답이 없는가? 왜 그 생기 넘치던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지 못하는가?


"아씨!"


"............."


"아씨!"


"..........'


 그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의 강은 흐르고 흘러 여자의 창백해진 얼굴에 방울 방울 떨어져내렸다.


"수혜............"


 그 동안 몰래 키워온 사랑. 비록 남들처럼 번듯하게 만날 수는 없어도 모처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화원을 가꾸는 것처럼 행복한 사랑이었는데......... 이렇게 서로를 망가뜨릴 거면 사랑하지 말 것을.......


"다시 태어나서...........또 사랑하자는 약속........."


 그는 화살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무정한 화살. 그 화살촉에는 아직 채 식지 않은 그녀의 온기가 묻어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겨눴다.


"꼭 지키자."


-푸악


 허공이 꽃이 새겨졌다. 조금 전까지 그의 혈맥을 타고 흐르던 피가 몸 속에서 해방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의 몸은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마치 살아있는 연인을 보듬 듯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수혜........다시 태어나면.........약속..........꼭............"


 그의 의식은 입에서 아무렇게나 흘러나오는 몇 마디의 말과 함께 천천히 지워져갔다. 차가운 이슬이 내려앉은 새벽의 흙내음이 쓰러진 그들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피는 서로 얽히고 얽혀 깊고 깊은 지하의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깊고.........깊게...........


 모든 것을 태초의 상태로 지워버리는 어둠 속으로.........


<눈꽃선녀>외전 천년의 사랑편-by묵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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