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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i Lauda // 교통사고 근절합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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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한 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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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 Niki Lauda
장르 : 일렉트로닉/테크노
감성 : 슬퍼/우울해
템포 : 140 Tempo
날짜 : 2009-10-24 16:06:27
사용된 악기 보기 (13)

안녕하세요 Solitude.입니다.


   이번곡은 제가 한기사를 보다가 만들게된


       Niki Lauda 라는곡입니다.


우선 Niki Lauda라는인물소개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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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슈마허가 운전면허도 따기 전, F1의 역사를 써내려가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키 라우다(Niki Lauda)', 그는 1949년 2월 22일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 기업의 후계자로 태어난 라우다는 무면허 시대부터 자동차를 몰고 다녔고, 운전면허 제도가 생길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레이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 그의 아버지는 레이서를 그만두지 않으면 라우다가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집안에서 내쫓겠다고 경고를 합니다. 라우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레이서의 길을 계속 걸었고, 덕분에 집안에서는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레이서 활동을 시작한 라우다는 유럽 F2 선수권으로 활약하다 1971년 F1으로 무대를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무일푼으로 쫓겨난 탓에 자금이 부족했던 그는 은행에 융자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F1 데뷔 시에는 자신의 레이스 계획이나 장래 전망에 대해 기자 회견을 여는 등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타입의 레이서로 등장하였습니다.
 초반 성적은 소속 팀의 전반적인 실력이 떨어지고 백업 선수까지 부족해 눈에 띄는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당시는 유명 레이싱팀인 페라리 역시 부진한 기록을 이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페라리는 부활을 위해 새로운 드라이버를 물색하기로 하고 당시 팀원인 클레이 레가조니의 추천을 받아 라우다의 영입을 고려하게 됩니다. 이후 라우다는 엔초 페라리와 면접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1974년 페라리로 이적하게 됩니다.


페라리로 이적 후, 그는 곧바로 두 번의 우승을 이끌어내며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1975년에는 강력한 신형 페라리 머신인 312T를 조종하게 되며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신형 기함과 함께 한 라우다는 5승을 이끌어냈고, '드라이버즈 월드 챔피언'이라는 값진 타이틀을 획득하며 F1의 톱 드라이버로서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머신 설계에도 참여를 하며 팀의 컨스트럭터즈 타이틀 획득에 높은 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성장세를 이어가며 다음 해인 1976년에도 유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뉘르부르크링에서 개최된 독일 그랑프리에서 그는 타이어 결함으로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안면을 비롯한 신체 여러 부분에 큰 화상을 입었으며, 유독가스와 열기 때문에 폐까지 손상되어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랍게도 6주 만에 레이스에 복귀하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얼굴에는 사고 당시 얻은 화상의 흉터가 선명하여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었지만 라우다는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같은 해 일본에서 개최된 F1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폭우로 인해 리타이어를 선언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다른 팀에게 단 1포인트 차로 세계 챔피언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엔초 페라리는 라우다의 은인인 레가조니를 해고하고 카를로스 로테이만을 영입하게 됩니다. 이 일로 팀과 라우다 사이는 점점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라우다는 1978년 브라밤으로 이적하였고 1979년에는 캐다나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개인 재산으로 라우다 항공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맥라렌 F1팀의 감독으로 활동하던 론 데니스의 설득으로 1982년 맥라렌 팀의 유니폼을 입고 F1에 복귀하게 됩니다. 포뮬러 레이스의 세계에 다시 뛰어든 그는 3년이라는 공백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관계자를 놀라게 했고, '복귀 후 4경기 이내에 승리를 거두지 않으면 즉각 은퇴하겠다.'라고 공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스스로를 은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1982년에 벌어진 영국 그랑프리에서의 우승과 함께 1984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패스티스 랩(Fastest Laps)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1984년에는 TAG 포르쉐 엔진을 장착해 더욱 강력해진 머신을 가지게 되었고, 팀메이트인 알란 프로스트와 격렬하게 챔피언 다툼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원숙미가 빛나는 라우다를 꺾기엔 신인 프로스트는 역량이 부족했고, 결국 승리는 라우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경기 후에도 라우다는 항상 프로스트를 격려하며 '다음은 너의 차례야'라는 말을 남기며 후배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인 1985년에는 차세대 스타 프로스트가 첫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라우다는 후배에게 영광의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지난 날과 달리 불과 1승밖에 거둘 수 없었지만, 그 1승은 프로스트를 불과 0.232초 차이로 따돌리며 승리를 따낸 것입니다. 이는 전설적인 경기로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라우다와 한 팀으로 있으면서 경쟁을 통해 스피드 뿐만 아니라 레이스 운영의 능숙함도 매우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며 선배 레이서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후 프로스트는 선배 라우다를 능가할 정도로 크게 성장해 청출어람을 몸소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라우다는 결과적으로 세계 타이틀은 3회였지만, 불행한 사고를 겪지 않았더라면 더욱 많은 기록을 남겨 미하엘 슈마허를 능가하는 전설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인물입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사업가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으며, 올해 1월에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하넨캄 스키 대회 기념 파티에 여자친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출저*

http://blog.daum.net/carpiter/4848917

http://blog.naver.com/benet709?Redirect=Log&logNo=150048259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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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된 블로그에 보여진 그는 정말멋진사람이였구요


또 그에 감명을받아 노래를제작하게 되었네요..


이번곡은 교통사고 근절하자는내용에 곡입니다.


앞차를 재껴야한다는 `-`..나쁜심리 ...


신호위반 ... 급하게 운전하기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되는것을........


이번곡은--------------------


약간 우울한 테크노적인 장르를 택했구요 .


들어보시구 평가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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